비 맞으며 140리 강행군… 상감마마, 해질녘 봉산에 닿다
보산 떠나 안성·용천 거쳐 봉산까지, 피란 조정의 하루가 말발굽 위에서 흔들리다
새벽녘 보산의 공기는 축축했고, 어가의 말안장은 아직 식지도 않았다. 선조께서는 이른 새벽 길을 재촉해 안성을 지나고, 용천에서 잠시 낮참을 든 뒤, 해가 기울 무렵 봉산에 이르렀다. 실록은 이날의 거리를 1백 40리라 적었는데, 편집부 계산으로는 사람도 말도 “오늘은 다리가 국책 사업”이라 항의할 만한 거리다.
비는 길 위의 먼지를 눌렀지만, 조정의 걱정까지 눌러 주지는 못했다. 젖은 도포 끝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고, 승정원 서리들의 장계 꾸러미는 품 안에서 축축하게 구겨졌을 것이다. 어느 익명의 호종 관원은 “왜적보다 먼저 장마가 우리 대열을 점령했다”고 중얼거렸다는, 매우 그럴듯한 풍문이 봉산 객사 처마 밑에 걸렸다.
용천현 대청에 들어선 상은 좌의정 최흥원, 우의정 윤두수, 좌참찬 한응인, 예조 판서 정창연, 우부승지 민여경 등을 불러들였다. 회의의 주제는 체면과 현실이 정면충돌한 문제였다. 적이 서울 가까이에 있어 중국 예부에 바칠 방물을 가져갈 수 없으니, 그 사정을 문서로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선 외교의 격식은 본래 정성스럽고 반듯해야 했으나, 이날의 사정은 반듯함보다 생존이 먼저였다. 서울이 위태로운데 방물 보따리까지 챙기라는 말은, 불난 집에서 문갑 광택을 먼저 닦자는 소리와 비슷했다. 예조 관원들은 체면을 잃지 않는 문구를 찾느라 붓끝을 굴렸고, 편집부는 이를 “비상시 외교문: 죄송하지만 나라가 지금 뛰는 중입니다”라고 요약한다.
봉산의 밤은 피곤한 말 숨소리와 젖은 옷 말리는 냄새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밤에도 조정은 멈추지 않았다. 어가가 하루 140리를 달렸다는 사실은 단순한 이동 기록이 아니라, 한양을 잃은 나라가 아직 무너지지 않으려 발버둥친다는 증거였다.
“방물은 못 갑니다”… 예부에 보낼 문서, 젖은 피란길에서 급히 작성
용천현 대청 회의에서 가장 난처한 의제는 중국 예부에 보낼 설명이었다. 적이 서울 근처에 있으므로 방물을 지참할 수 없다는 뜻을 이자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말은 간단하지만, 외교 문서에서는 “못 가져갑니다” 네 글자도 나라 체면을 걸치고 걸어야 한다.
예조 판서 정창연에게는 참으로 야속한 하루였을 것이다. 전쟁은 남쪽에서 치고 올라오고, 예법은 책상 위에서 똑바로 앉으라 하니, 붓 잡은 손이 비보다 더 바빴겠다. 어느 서리는 “방물보다 사정 설명문이 더 무겁다”고 투덜댔을 법하다.
저잣거리 백성이라면 이 소식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나라님도 피란 중인데 선물 보따리부터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조선의 외교란 빈손으로 가더라도 문장만은 빈손처럼 보이면 안 되는 법, 오늘 예조의 임무는 젖은 한지 위에 마른 체면을 세우는 일이었다.
두기나루 방어 회의… “5~6천이면 막습니다, 단 농부입니다”
병조 판서 김응남과 부호군 이천 등이 불려 들어와 두기나루 파수 문제가 논의되었다. 이천은 5~6천 명만 있으면 지킬 수 있다고 하면서도, 지금 군사들이 모두 농부라 훈련이 되지 않았다는 현실을 덧붙였다. 한마디로 병력 숫자는 있어도, 전쟁 교본은 논두렁에 두고 온 셈이다.
이천은 자신의 직급이 낮아 직접 영솔하면 반드시 허물어질 것이라고도 아뢰었다. 이 말은 겸손이라기보다 전쟁터 행정의 냉정한 진단에 가깝다. 지휘 깃발이 가벼우면 군심도 가볍게 흔들리는 법이라, 회의장 공기는 빗물보다 더 차가웠을 것이다.
두기나루는 단순한 물가가 아니었다. 피란길과 방어선, 보급로의 숨통이 걸린 자리였다. 나루 하나를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에 따라 조정의 다음 숙소와 백성들의 다음 불안이 함께 정해지는 날이었다.
생우피 방패와 마름쇠 등장… 조선판 긴급 군수 회의 열리다
이천은 왜적의 장기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철환과 단병이라며, 생우피로 방패를 만들면 철환을 피할 수 있다고 아뢰었다. 오늘 회의장에는 전쟁의 최신 유행어처럼 생우피 방패가 떠올랐다. 소가 들으면 억울하겠지만, 나라가 급하면 가죽도 국방 물자가 된다.
상은 각 고을에서 때맞추어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는 왕의 조급함과 현장의 걱정이 함께 담겨 있다. 만들 수 있느냐는 말은 사실 “늦으면 안 된다”는 뜻이고, 때맞추라는 말은 “왜적은 우리 제작 일정표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응남은 마름쇠를 황해도에서 만들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아뢰었다. 마름쇠란 적의 발과 말발굽을 괴롭히는 작은 쇳조각이니, 오늘 조정의 희망은 거창한 대포보다도 길바닥에 뿌릴 날카로운 쇠붙이에 실렸다. 편집부 평: 전쟁은 때로 영웅보다 철물점이 먼저 바쁘다.
평양 가거든 민가 약탈 금지… 피란 조정, 민심 잃을까 먼저 경고
김응남은 평양에 도착하면 장병들에게 민가를 약탈하지 말라고 명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왜적을 피해 가는 길이라 해도, 호종 군대가 백성의 집을 털면 그 순간 보호자는 또 다른 재앙이 된다. 전쟁 중 민심은 쌀독보다 빨리 비고, 한 번 비면 다시 채우기 어렵다.
이 대목은 피란 조정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잘 보여준다. 적의 칼도 무섭지만, 굶주린 군사의 손과 무너진 군율도 무섭다. 어느 평양 백성은 이 소식을 들었다면 “왜적은 멀리 있고 군사는 가까이 있으니, 명령문이 제발 우리 대문까지 와 닿기를 빈다”고 했을 법하다.
상은 이천이 거느릴 군대가 없으면 본도의 군대를 거느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고, 이천은 황해 감사와 함께 가고 싶다고 답했다. 끝내 대신들과 의논해 시행하라 하고 술을 내린 뒤 회의가 파했다. 술 한 잔이 피로를 씻어 주었을지는 모르나, 봉산의 밤이 품은 걱정까지 씻기엔 잔이 너무 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