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5월 9일 · 근대/통신 · 고종 32년(1895) 5월 9일

봉수대 불 꺼진다, 조선의 오래된 밤 신호 역사 속으로

군부 주청으로 각처 봉대와 봉수군 폐지, 산마루 통신망 퇴장

산마루마다 밤을 깨우던 봉수의 불빛이 마침내 장부에서 내려왔다. 고종 32년 5월 9일, 군부의 주청에 따라 각 처의 봉대와 봉수군을 폐지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봉수대의 재는 아직 따뜻했으나, 관청 문서에는 이미 ‘폐지’ 두 글자가 차갑게 찍혔다.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로 소식을 달리던 오래된 통신망은 조선의 눈과 귀였다. 변방에 일이 생기면 산에서 산으로 신호가 뛰었고, 한양의 관청은 그 연기를 보고 가슴부터 철렁했다. 그런데 이제 그 산길 신호가 시대의 뒤편으로 물러나게 된 것이다.

봉수군의 손에는 횃불 대신 낯선 공문이 쥐어졌을 법하다. 어느 늙은 봉수군은 꺼져 가는 화덕 앞에서 ‘적보다 먼저 세월이 쳐들어왔다’고 중얼거렸을지도 모른다. 편집부도 이 대목에서는 괜히 목이 칼칼하다. 연기 탓인지, 시대 탓인지 알 수 없다.

같은 날 인사 명령도 있었다. 이태직은 일본 주재 공사관 참서관에, 이윤종은 농상공부 회계국장에 임명되었다. 봉수는 사라지고 공사관과 회계국 같은 새 이름들이 조정 장부 위로 올라왔으니, 한쪽에서는 불을 끄고 다른 쪽에서는 근대의 등잔을 켠 셈이다.

장안의 백성들은 아직 산마루 불빛이 사라지는 뜻을 다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편집장은 안다. 오늘의 짧은 명령 한 줄은 단순한 행정 정리가 아니라, 조선이 오랫동안 써 온 ‘하늘로 보내는 속보판’을 접는 날이었다.

삼수에 또 북방 기병, 조정 ‘칠 것인가 지킬 것인가’ 격론

【군사/변방】 연산군 5년(1499) 5월 9일

함경남도 절도사 유빈의 장계가 도성에 들어오자 승정원 마루가 단숨에 얼어붙었다. 삼수군 감파리에 적 기병 50여 기가 침입해 남녀 네 사람과 소 두 마리를 끌고 갔다는 보고였다. 붓 든 서리 하나가 먹을 찍다 말고 눈동자만 굴렸다는 소문이 편집부까지 닿았다.

연산군은 대신들에게 대책을 물었다. 윤필상은 토벌의 필요를 말하면서도 경솔한 출병을 경계했고, 신승선은 농번기 대군 동원 대신 장정 백여 명을 골라 지키게 하자고 했다. 지도 위 삼수 지명이 손끝으로 짚히는 동안, 회의장 촛불은 바람도 없는데 자꾸 흔들렸다.

같은 날 또 야인이 삼수 지면을 침범해 백성 일곱 명을 끌고 갔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추격하던 우리 군사 네 명은 작은 배가 뒤집혀 물에 빠져 죽었고, 적의 머리 하나를 베었다고 했다. 조선실록일보 군사면 한 줄 평은 이렇다. 변방의 먼지는 늘 먼저 일어나고, 조정의 결론은 늘 그 뒤를 달린다.

수강궁 술자리서 인사 비화, 상왕 ‘황희의 죄는 가볍다’

【궁중/정치】 세종 1년(1419) 5월 9일

하늘에는 햇무리가 둥글게 걸렸고, 수강궁 안에는 묘한 술기운이 돌았다. 세종은 문안하러 나아갔고, 상왕은 연경에서 돌아온 우의정 이원과 경상도에서 돌아온 신상을 불러 술을 내려 위로했다. 잔은 작았지만 그 안에 비친 정국의 그림자는 길었다.

말머리는 곧 이직, 이숙번, 황희, 박신, 박자청, 장윤화 같은 처벌받은 인물들의 처지로 옮겨갔다. 상왕은 황희의 죄가 가볍다며 처자식을 보내 생계를 안정시키게 하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신하라면 ‘술자리라 하여 말까지 취하는 것은 아니구나’ 하며 갓끈을 고쳐 맸을 법하다.

바깥에서는 사간 정수홍 등이 박초와 우박의 임용이 부당하다고 상소했다. 장물죄 전력이 있는 박초와 상왜와 매매한 우박을 중직에 두는 것은 마땅치 않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임금은 윤허하지 않았고, 사간원의 붓끝은 잠시 허공에서 멈췄다.

가뭄 앞에 술잔 멈춰라, 단종 조정 금주령

【기상/민생】 단종 3년(1455) 5월 9일

마른 바람이 궁궐 기와 끝을 핥고 지나가자 예조와 사헌부가 분주해졌다. 단종은 문소전 공상, 크고 작은 제향, 중국 사신과 이웃 나라 손님 접대 외에는 각 전각과 궁에 술을 올리지 말라고 전교했다. 궁중의 술항아리도 이날만큼은 입을 꾹 다문 모양새였다.

사헌부에는 도성 안팎의 술 사용을 금하게 했다. 저잣거리 주막에서는 술독 뚜껑이 덜컥 닫히고, 주모들은 ‘비가 와야 술도 산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터다. 논밭만 목마른 것이 아니라 장사꾼의 셈판도 말라 갔다.

북교에서는 기우제가 행해졌고, 여러 도에 다시 향과 축문을 내려 비를 빌자는 청도 받아들여졌다. 이미 빌었으나 효험이 없으니 다시 빌자는 말에 회의장에는 물 한 방울만큼의 농담도 조심스러웠다. 편집부 기상평은 간단하다. 하늘의 결재가 너무 늦다.

대낮에 태백성 번쩍, 바다 방비까지 조정의 눈이 바빠졌다

【미스터리/국방】 태종 12년(1412) 5월 9일

태백성이 대낮에 나타나고, 화성이 태미의 우집법성을 가까이 범했다는 천문 보고가 올라왔다. 궁궐 안 천문 담당자들의 눈은 하늘에 붙고, 대신들의 마음은 국정 장부에 꽂혔다. 별 하나가 낮에 보이면 조정의 표정은 밤보다 더 어두워지는 법이다.

같은 날 한성부 윤 윤향은 수군과 관련한 두 조목을 상서했다. 연해 지역 군사 편제와 경상도 방어 거점의 거리 문제를 짚으며, 갑작스러운 변고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아뢰었다. 지도 앞의 신하들은 바닷길을 손가락으로 재다가 한숨을 삼켰을 것이다.

조성 도감에는 궁온이 내려졌고, 더위가 가까우니 기와 굽는 역도들을 놓아보내도 좋다는 말도 나왔다. 하늘에는 별의 경고, 바다에는 방비의 걱정, 공사장에는 더위의 현실이 한날 몰렸다. 조정 일정표도 천문도처럼 복잡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