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5월 19일 · 국방/정치/사회 · 선조/1592년 5월 19일

충격! 용상 버린 임금, 평양으로… 한양은 왜적의 발굽 아래!

파천(播遷)의 길, 백성들의 절규 속 선조대왕의 고뇌 깊어지다

전쟁 발발 한 달, 한양이 함락 위기에 처하자 선조대왕께서 결국 도성을 떠나셔야 했다는 비통한 소식이 전해졌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궁궐을 뒤로한 채 서북쪽으로 향하는 어가(御駕)의 행렬은 망연자실한 백성들의 눈물 속에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임진년 왜적의 침략은 이리도 빠르고 참혹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늘 새벽, 조정 대신들은 혼비백산하여 파천을 논하였고, 결국 평양으로의 몽진이 결정되었다. 이 소식에 저잣거리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백성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한양을 지키는 것은 이제 오직 남은 병사들과, 하늘의 뜻뿐이라는 비통한 탄식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사관(史官)의 붓끝은 떨렸지만, 이 참담한 현실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조대왕은 대신들에게 "백성들을 버리고 떠나는 이 심정을 누가 알리오"라며 깊은 고뇌를 토로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한양에 남아 왜적의 칼날에 스러지는 것보다는, 왕실의 종묘사직을 보존하는 것이 더 큰 책임이라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다.

어가의 행렬은 밤새도록 이어졌고, 굶주림과 피로에 지친 백성들은 왕의 행차를 보며 한편으로는 원망을, 다른 한편으로는 재기를 바라는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임금님, 부디 무사히 피하시어 다시 이 땅을 되찾아 주소서!" 하는 통곡 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는 전언이다.

이번 파천은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본보(本報)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임금께서 무사히 피하시어 전열을 가다듬고, 의병들의 활약과 명나라 원군이 합류한다면, 이 고통스러운 전쟁도 반드시 끝날 것이라 믿는다. 부디 이 땅에 다시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왕위 계승의 격랑 끝에… 정안군 이방원, 드디어 왕세자로 등극!

【정치】 정종/1400년 5월 19일

어제오늘 조정은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이른바 '제2차 왕자의 난' 이후, 권력의 추가 급격히 정안군 이방원에게 기우는 듯하더니, 오늘 드디어 정안군이 왕세자로 책봉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장안이 떠들썩하다. 혼란스러웠던 왕실에 드디어 안정이 찾아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종대왕께서는 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봉하면서 "국가가 의지할 곳이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명하셨다고 한다. 이는 사실상 이방원이 조선의 미래를 짊어질 실질적인 권력자가 되었음을 천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궁궐의 분위기는 숙연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예감하는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으로 형제간의 골육상쟁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이들은 이번 책봉을 보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되뇌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혼란을 수습하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인물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이제 조선은 이방원의 시대로 접어들게 될 것인가.

가뭄에 지친 백성들, 옥에 갇힌 죄수까지 살피는 성군(聖君)의 마음!

【민생/궁중】 세종/1419년 5월 19일

연일 가뭄이 지속되어 백성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세종대왕께서 죄수들의 안위까지 염려하여 옥중의 죄수들에게 밥을 주라고 명하셨다는 훈훈한 소식이 전해졌다. 비록 죄를 지어 옥에 갇힌 몸이지만, 한 명의 백성이라도 굶주림으로 고통받지 않게 하려는 임금의 깊은 자비심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소식을 접한 한 노파는 "임금님께서 옥에 갇힌 이들까지 살피시니, 우리 같은 평범한 백성들은 얼마나 더 살뜰히 보살피시겠는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정에서는 가뭄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한편, 임금의 이러한 지시가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큰 위로가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이번 조치는 단순히 굶주림을 면하게 하는 것을 넘어, 죄수들에게도 인간적인 대우를 베풀어 혹독한 옥중 생활에 한 줄기 희망을 준다. 작은 일이라 여길 수도 있겠으나, 백성을 아끼는 임금의 마음이 하늘에 닿아 단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백성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젊은 피 조광조, 조정에 새 바람 예고! 도학정치(道學政治)의 서막 열리나?

【정치/문화】 중종/1515년 5월 19일

개혁을 향한 중종대왕의 의지가 드디어 현실화되는 것인가! 오늘 조정에서는 젊은 유학자 조광조가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었다는 파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뛰어난 학문과 강직한 성품으로 이미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인재였기에, 그의 등용은 조정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도학(道學)을 깊이 탐구한 조광조는 임금에게 왕도정치(王道政治)와 사림(士林)의 중요성을 역설해왔다. 그의 등용은 훈구파가 주도하던 조정에 신진 사림 세력이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제야 나라가 바르게 설 기회가 온 것 아니겠소!"라며 기대에 찬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급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조광조의 행보에 대해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다. 과연 그의 이상적인 도학정치가 현실 정치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아니면 기존 세력과의 갈등을 빚을지, 장안의 이목은 온통 조광조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리고 있다. 바야흐로 조선 정치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

정조대왕, 직접 붓 잡고 인재 발탁! 규장각 시험에 장안 학자들 들썩!

【정치/교육】 정조/1780년 5월 19일

오늘 규장각에서는 정조대왕께서 직접 주관하는 특별한 과거 시험이 열려 장안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임금께서 친히 시험관이 되어 인재를 선발하시겠다는 소식에 전국의 젊은 선비들은 물론, 내로라하는 학자들까지 설렘과 긴장 속에 시험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는 진정한 실력으로 인재를 뽑으려는 임금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규장각은 정조대왕께서 학문을 진흥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치한 기관으로, 이곳에서 임금이 직접 시험을 치르는 것은 그만큼 인재 발탁에 대한 왕의 열의가 지대함을 뜻한다. 시험장에는 붓놀림 소리만 가득했고, 응시자들은 임금의 눈앞에서 자신의 모든 학식과 재능을 쏟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응시자는 "성상(聖上)께서 친히 시험을 주관하시니, 비록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임금의 뜻을 헤아릴 수 있어 영광이다"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이번 시험을 통해 어떤 인재들이 발탁되어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지, 장안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역시 우리 임금님은 남다르시다!